대체복무인가 대체‘복역’인가···기간 절반 채우고 대체복무 거부도

정희완 기자

대체복무제 시행 이후 최소 8명이 거부

“현역병의 고통을 기준 삼는 게 옳은가”

돌봄노동·긴급재난 대응 민간 복무 제안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형사처벌을 감수하고 대체복무마저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현행 대체복무제도가 징벌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대체복무자는 36개월 동안 합숙 형태로 교정시설에서만 복무해야 한다. 특히 대체복무 기간 절반을 채웠는데도 복무를 거부한 사례까지 나왔다. 이런 현상이 제도의 징벌성을 방증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8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대체역법이 제정돼 2020년 1월 시행됐고, 그해 10월 첫 소집이 이뤄졌다. 최근 1기 대체복무요원 60명이 3년간 복무를 마치고 소집해제됐다.

이를 계기로 복무 기간, 분야, 형태 등 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대체복무를 기본적으로 군대가 아닌 민간을 기준으로 삼아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절반 복무하고도 자진해 중단

지난 10월 말 대체복무요원 60명이 소집해제되면서 복무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1253명이다. 이와 달리 대체복무 자체를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있다. 현재까지 최소 8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현행 대체복무가 징벌적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8명 가운데 6명은 대체역심사위원회에서 대체역 인용 결정을 받았지만, 대체복무 소집에 응하지 않거나 중간에 복무를 중단했다. 나머지 2명은 대체복무를 아예 신청하지 않았다.

첫 번째 대체복무 거부자는 지난해 7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변론이 모두 종결됐지만, 법원은 선고기일을 추후 지정키로 하고 무기한 미룬 상태다. 두 번째 거부자도 광주지법에서 재판 중인데, 지난 9월 이후 다음 공판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지난 4월 기소돼 서울동부지법에서 재판을 받는 대체복무 거부자는 대체역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현행 제도의 징벌성이 제거돼야 복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마찬가지로 법원이 지난 8월 변론기일을 추후 지정키로 하면서 재판이 중단됐다.

법원이 이처럼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 이유는 헌법재판소에 대체복무제 관련 헌법소원이 계류돼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헌재의 결정을 지켜본 뒤 선고를 하거나 변론을 재개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2021년 1월 당시 대체복무요원 한명이 대체복무제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처음으로 청구했다. 이후 같은 취지의 헌법소원이 잇따라 제기됐고, 현재 100여 건에 이른다. 대체복무를 ‘36개월·교정시설·합숙’으로 규정한 대체역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청구인 측은 지난 1월 헌재에 공개변론을 신청했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3명 외에 5명은 검찰·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거나 받을 예정이다. 특히 2명은 대체복무를 하던 중 스스로 편입을 취소했다. 한명은 1년 6개월, 다른 한명은 5개월 정도 복무한 뒤 그만뒀다. 이후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았지만 입영을 거부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를 변호하는 김진우 변호사는 “이미 긴 기간 동안 복무했던 대체복무요원이 심사숙고 끝에 형사처벌을 각오하고 복무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복무의 징벌성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처벌받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유엔자유권위원회가 한국의 대체복무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실을 거론하며 “앞으로 대체복무제가 징벌이라는 오명을 벗고 인권을 보호하고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엔자유권위원회는 지난 11월 3일 한국 정부가 제출한 자유권규약 이행 제5차 국가보고서를 평가한 최종견해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1990년 자유권규약을 비준한 뒤 정기적으로 심의를 받고 있다. 자유권위원회는 최종견해에서 대체복무의 기간 단축, 복무영역 다양화, 현역 군인의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 헌재 결정에 따라 석방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보상 제공 등을 권고했다.

대체복무를 시행하는 다른 국가에서도 이처럼 대체복무를 중단하고 형사처벌을 선택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핀란드의 평화단체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연합’에서 활동하는 마티아스 카스킬루토는 지난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대체복무의 문제점과 개선점’ 토론회에서 “완전한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들 가운데 대체복무를 하다가 중단하는 경우가 흔하다”라며 “처음부터 대체복무를 거부하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절차상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체복무의 징벌성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대체복무자가 복무 마지막 날에 거부를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왜 ‘고통’이 기준이 돼야 하나

대체복무요원의 첫 소집해제가 이뤄진 지난 10월 말 이후 제도 개선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잇따라 마련됐다. 지난 11월 7일 대한변호사협회 및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 지난 11월 18일 전쟁없는세상과 참여연대,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이 주최한 토론회다. 이들 토론회에서는 현행 제도의 징벌적 성격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여러 대안이 제시됐다.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이광수 변호사는 현행 대체복무를 ‘대체복역’이라고 평가했다. 현역에 비해 2배나 많은 기간과 함께 분야가 교정시설로 한정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과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수감생활을 하면서 했던 일과 현재 대체복무요원이 하는 업무가 같다”라며 “전과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 말고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를 3년간 운영한 결과 대체복무제로 인해 국방력이 약해졌다는 단초는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전쟁없는세상과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대체복무 문제점과 개선점’ 토론회가 개최됐다. 왼쪽부터 다니엘 목스터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인권조사관, 안악희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시우 젠더문화연구소 연구원,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강인화 서울대 국사학과 BK조교수 /전쟁없는세상 제공

지난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전쟁없는세상과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대체복무 문제점과 개선점’ 토론회가 개최됐다. 왼쪽부터 다니엘 목스터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인권조사관, 안악희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시우 젠더문화연구소 연구원,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강인화 서울대 국사학과 BK조교수 /전쟁없는세상 제공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는 대체복무제가 ‘고통을 줄 세우는 식’으로 만들어졌다고 꼬집었다. 대체복무가 현역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민간영역에서의 복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0년 6월부터 3년 동안 대체역심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류 활동가는 “현행 대체복무제의 내용과 기간 등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면, 반대 측에서는 늘 현역 군인의 고통을 기준으로 제시한다”라며 “현역이 합숙 생활을 하는 게 고통이니 너희도 합숙해라, 현역이 이러이러하니까 너희도 상응하는 고통을 받아라 등과 같은 논의는 문제를 개선하는 데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현역의 인권과 처우 또한 개선해야 하고, 대체복무는 민간에서 복무케 해야 한다”고 했다.

류 활동가는 특히 복무 분야가 교정시설로 한정되면서 대체복무요원들이 시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됐다고 짚었다. 그는 “대체복무가 민간영역에서 이뤄져 시민들이 대체복무자를 일상에서 만나고 겪을 수 있어야 한다”라며 “그래야 대체복무의 존재를 알고 느끼고, 그 존재 의의와 활동 방향을 적극 사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체복무는 현역병의 고통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안보나 폭력의 개념을 다른 식으로 대체하고 확충하려는 게 본래 취지라고 류 활동가는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생태적 위기 대응, 성별화되고 시장화된 돌봄노동을 탈성별화하고 공공화하는 활동, 농어촌 지역사회를 보살피는 활동, 폭우와 지진 등 재난에 대응 등을 복무 분야로 제안했다. 이 가운데 폭우 등 긴급재난에 대응하는 업무의 경우 비정기적인 비상소집 형태를 취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만 소집하는 대신 복무 기간을 길게 잡는 등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류 활동가는 “무기훈련을 하는 현역병의 고됨과 고령자나 장애인 등을 돌보는 일의 어려움, 재난 구호와 방제 활동의 위험 등은 서로 비교해 저울질할 수 없는 것”이라며 “대체역 희망 복무자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에 부합되는 다양한 업무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대체역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신혜 변호사도 복무 분야를 확장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교도소에서 합숙 형태로 복무하다 보니 대체복무요원들이 사회로부터 평가받을 기회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심사 기간, 복무대기 기간, 복무 기간을 모두 합해 7~8년씩 소요되면서 20대 대부분을 쏟아부어야 한다”라며 “우리 사회에서 청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현행 대체역제도는 청년을 썩히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현역과 비교해 ‘시민 대 시민’ 갈등 유발

입영 대상자들에게 대체복무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국에서 고지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애초 정부가 2018년 12월 입법예고하고 2019년 4월 국회에 제출한 대체역법에는 “병역판정검사를 받아야 하는 병역의무자들에게 대체역의 제도와 편입 신청 절차 등을 알려야 한다”는 고지의무 조항이 담겼다. 그러나 국회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삭제됐다. 안악희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은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가 제한되고 구조적으로 대체복무제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이미 현역병으로 복무 중인 이들은 대체복무를 신청할 수 없는 부분도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체복무가 민간과 무관하게 설계되고 징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은 정부·국회가 합리적 근거보다는 국민 정서와 여론을 우선순위로 고려했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20년 동안 외교·국방 분야를 담당한 형혁규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육군의 2배는 돼야 하지 않느냐, 징병제를 운영하는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해외보다 더 세게 가야 하지 않느냐가 기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대체복무제를 악용하는 기피자자 양산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형 조사관은 그러나 “그간 병역기피의 경우 대놓고 도망 다니는 게 아니라 법망을 빠져나가 처벌을 피하려는 기피자가 사회적으로 더 문제가 돼왔다”라며 “대체복무제를 악용하려는 기피자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게 포장·평가돼 복무의 기간·분야가 설정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체역 신청 대비 인용률이 90% 이상에 달하고 신청건수가 매년 감소하는 추세를 거론하며 “아직 제도의 적합성을 판단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이런 결과만 본다면 징벌적 성격을 갖게 된 배경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체복무인가 대체‘복역’인가···기간 절반 채우고 대체복무 거부도

2020년 6월부터 3년 동안 대체역심사위원회 위원을 지낸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가 사회적 갈등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국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현역병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시민 대 시민의 갈등 구도를 만들어 냈다”라며 “국가의 역할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사회적 필요에 맞는 복무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위해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대체역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강인화 서울대 국사학과 BK조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현역복무자들의 열패감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현역병의 열악한 처우와 지위, 인권 수준을 기준으로 하는 형평성을 명분 삼아 징벌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체복무 시행 이전) 그간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사회적 낙인과 강력한 처벌로 일관했다”라며 “대체복무제 운영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식 개선과 명예회복에 바탕을 둬야 한다”라고 했다.

강 조교수는 아울러 병무청 산하에 설치된 대체역심사위의 구성과 운영 등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체역심사위는 2020년 6월 출범 당시 29명으로 꾸려졌지만, 지난 6월 신청건수 감소 등에 따라 13명으로 축소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방부가 추천하는 위원의 비중이 기존보다 늘어났다. 강 조교수는 “대체역 심사와 운영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국방부, 병무청, 국회국방위원회의 위원 추천 권한을 축소하거나 삭제해야 한다”라며 “병무청이 아닌 별도 기관에 심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병무청 “향후 신중히 검토”

병무청은 대체복무제도 개선과 관련해 헌재 헌법소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병무청은 지난 11월 21일 주간경향의 질의에 “대체역제도는 이제 시행된 지 3년 남짓 된 초기”라며, “현재 100여 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황이므로 헌재의 결정이 나오면 군 복무 중인 장병과의 형평성,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체역제도 개선을 위해 추진하거나 검토 중인 사안이 있는지를 두고는 “다른 병역의무자와 형평성 차원에서 개선·보완할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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